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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지평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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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앞에 우리는 모두 당사자”
기후 활동을 하다보면 흔히 듣는 표현이지만, 이는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 아니, 더 정확히는 진짜 진실을 가리는 말이다. 기후위기는 본질적으로 위기를 초래한 사람과 그 충격을 감당할 사람이 분리된 재난이다. 위기의 원인 제공자는 과거와 현세대지만, 그 결과는 이후 세대가 짊어지게 된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이를 기후위기는 시간 지평의 비극이라고 표현했다. 현재 세대는 부분적인 피해만 입기에 문제를 해결할 직접적인 동기(인센티브)가 부족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들의 손에 기후위기 대응 정책 결정권이 쥐어져 있다. 기후위기에 따른 위험은 탄소의 누적배출량에 비례한다는 점에서 선제적으로 대응할수록 효과적이지만, 정책 결정권자들에겐 ‘지지율 떨어지는 소리’일 뿐이다.

이 비극은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다

현재 정부는 2035년 온실가스 감축목표(2035 NDC) 수립 논의에 한창이다. 이례적으로 대국민 공개 토론회를 연속으로 진행하고 있고, 토론회마다 “우리 미래 세대의 권리”가 소환된다. 립서비스다. 우선순위는 ‘미래’가 아닌 ‘바로 지금 여기' 잘 먹고 잘 살아야 하는 우리, 즉 지지율에 힘을 보태줄 현재 세대다. 4개 정부 논의안(48%, 53%, 61%, 65%)에 기후위기 대응에 택도 없는 오답들이 포함된 것만 봐도 그렇다.
산업계는 '미래'를 한가한 소리로 치부하며 '우리는 미래가 아니라 지금 당장 생존'이 중요하다며 낮은 감축률을 요구한다. 현실 정치에선 미래 세대의 권리보다 2035 NDC 발표 다음 날 조간 신문에 실릴 대통령 지지율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이 모든 행태는 지극히 현실적, 실용적 접근이라는 명목 아래 정당화된다.
한 마디로, my dear young fellows, we’re about to be f*cked…
하지만 '공정성'에 그 어느 때보다 민감하다는 청년 세대는 놀라울 정도로 잠잠하다. 진짜 문제에 대한 설명을 어디에서도 듣지 못했고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토론장에서 2035 NDC 감축률이 높게 설정될 때의 부담은 끊임없이 강조되지만, 낮게 설정됐을 때 청년 세대가 앞으로 감당해야 할 피해와 그 비용에 대한 정보는 간편히 누락된다. 부조리의 전형적인 패턴인 강조와 누락이다.
이 뻔한 부조리 앞에 언제까지 침묵할 것인가? 언제까지 잠잠할 것인가?
지금 이 순간에도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는 전방위적 요구가 쏟아지고 있고, 정책 결정권자들은 지극히 단기적인 정치적 순환의 시간 지평 속에서 2035 NDC를 논의하고 있다. 이 시간 지평의 비극을 막아낼 목소리는 너무 작고 단발적이며 흩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