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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 2025.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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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만 살아봐서 도시의 익명성, 타인과의 선선한 거리가 너무 좋아. 아마 난 여기에 너무 익숙해서 도시가 아닌 곳에선 못 살거야.
라고 종종 서울깍쟁이처럼 말하곤 하지만, 사실 나는 암사동 한 골목길에서 이웃사촌들과 엎어지면 코닿을 거리와 관계 속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골목 초입에는 나와 동갑내기인 지영이네 청과물상이 있고 맞은편엔 ‘향기가 있는 책방’이 있는 골목길이었다. 향기는 책방네 딸 이름이었다.
지영이네 어머니느 참새들 쪼아 먹으라고 두부 반모씩을 골목길에 두어서, 청과물상 앞 골목에 앉아 참새구경 하는 것이 내 소소한 취미였다. 지영이 어머니는 상추 따위에서 달팽이나 애벌레가 나오면 동네 꼬마들에게 줬기 때문에 나는 고것을 얻길 바라며 청과물상에 가 ‘지영아 노올자’라며 기웃거리길 좋아했다.
지영이와 나, 우리보다 한 살 위인 은혜 언니까지 이렇게 셋은 한글 동기였다. 은혜 언니 초등 입학 전인지 유치원 들어가기 전인지 하여튼 그 즈음에 동네 아줌마가 한글 교실을 꾸렸고, 우리 셋은 <미운 오리 새끼>를 교재로 한글을 뗐다. 엄마는 두고두고 내가 그 덕에 한글을 깨쳐 사람구실 한다며 감사해 해야한다고 말씀하셨다.
골목 제일 안쪽에는 오빠 친구가 살았는데, 갈이 밥도 먹고 수박에 설탕도 뿌려 먹고 하여간 몇 년을 같이 컸다. 오빠 친구는 동생이 두어 번 바뀌었는데, 그게 그 집 아저씨가 아이가 있는 새엄마들을 들여 그때마다 동생이 바뀐 것이라는 것을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눈치챘다. 그땐 그냥 새로운 또래 친구가 생긴걸로만 여겼다.
어느날 오빠 친구가 머리에 밀가루 같은 것을 뒤집어쓰고 집에 와 엄마가 빨간약을 발라줬다. 놀다가 마빡이 깨졌다고 했다. 밀가루가 실은 가루 지혈제였다는 것을 나는 또 몇 년이 지난 후에야 눈치챘다. 그집 아빠가 오빠 친구가 자기가 데려온 여자를 ‘엄마’라 부르지 않는다고 패서 머리가 깨지자 대충 가루 지혈제를 뿌리고 출근했던 것이다. 엄마는 이런 사정을 오빠 친구네가 세들어 살던 골목집 할머니들에게 들어 알고선, “절대 지 애비가 때렸다고는 안 하고 놀다 다쳤다고만 하더라”는 말을 했었다. 이런 정황들을 나는 몇 년이 지나서야 문득 이해하곤 했다. 아 그때 그게 그런 거였구나…
지금 떠올려보면, 정말 작은 골목 안에 다닥다닥 사람들이 살았다. 그땐 경찰과 도둑 놀이를 한참 할 수 있을 정도로 크다고 느꼈는데.
지영이랑 은혜 언니랑 향기랑 오빠 친구는 잘 살까. 오빠 친구의 동생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