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에 관해 나는 당연 실용파다. 추가 기능이야 그 다음이고, 디자인은 또 그 다음이다. 일단 책갈피 본연의 역할을 잘 수행할 덕목을 갖춰야 한다. 고작 책갈피인데 실용성이야 다 거기서 거기 아니냐고? 그건 책갈피의 세계를 잘 몰라서 하는 이야기다.
책갈피 좀 써본, 그리고 과몰입 좀 할 줄 아는 사람으로서 책갈피의 실용성 3대 덕목을 소개한다.
책갈피 실용성 3대 덕목
1.
책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
얼핏 당연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첫 번째 덕목으로 꼽은 이유가 있다. 의외로 어떤 책갈피들은 책을 상하게 하기 때문. 책 상하는 것에 개의치 않는다면야 왜 책갈피를 쓰겠는가. 그냥 접어두면 되는 것을. 책갈피를 사용하는 이유는 당연하게도 책을 깨끗이 유지하면서 읽던 위치를 표시하고 싶어서다. 이 목적 달성을 저해한다면야 책갈피의 제1 덕목을 갖췄다고 할 수 없다.
2.
웬만해선 책에서 빠지지 않는다.
페이지를 표시해두려고 책갈피를 꽂아뒀는데, 툭하면 빠져버린다면? 제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없다. 때문에 좋은 책갈피라면 무릇 웬만해선 책에서 잘 빠지지 않아야 한다. 온갖 잡동사니랑 같이 보부상 보따리 같은 가방에 넣어 메고, 공중제비를 돌며 돌아다닌다고 해도 말이다.
3.
다양한 크기, 두께의 책에 두루 사용할 수 있다.
책은 크기도 두께도 다양하다. 사이즈가 큰 그림책이 있는가하면, 작디 작은 손바닥 문고판도 있다. 팸플릿 같이 얇은 책을 읽을 때도 있지만, 800쪽 넘어가는 벽돌 책도 가끔 읽는다. 좋은 책갈피는 무릇 이런 다양한 크기와 두께의 책에 두루 사용될 수 있어야 한다.
위 3가지가 책갈피의 3대 덕목이다. 이 덕목들을 모두 충족한다면, 그 책갈피는 실용성 측면에서 아주 우수하다 할 수 있다. 물론 기본에 충실한 실용파가 있는가 하면 추가 기능을 가진 기능파들도 있다. 이는 아래 내가 사용해본 책갈피들을 리뷰하며 이야기하겠다.
직접 사용해본 책갈피 리뷰
1.
페이지 키퍼
제품명 PageKeeper. 페이지를 넘기면 자동으로 핀이 해당 페이지에 위치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책 뒷 표지, 혹은 막장에 클립을 고정하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핀이 새로운 페이지에 자동으로 위치한다. 책갈피를 끼워넣기 귀찮았던 어떤 책 덕후가 만들었지 싶다. 클립이 빡빡해서 ‘웬만해선 책에서 빠지지 않는다’라는 두 번째 덕목을 충족하지만, 3대 덕목 중 1&3은 충족하지 않는다. 일단 책에 클립 자국이 남는다. 또 두꺼운책에 사용할 수 없다. 200페이지 안쪽 책에 사용하는 것이 적당하다.
실용성 3대 덕목 ☆ ★ ☆
기능성 ★ ★ ☆
감성 ★★ ☆
2.
철제 북클립
작고 귀엽다.
하지만, 책장이 미세하게 찢기거나 자국이 남아 훼손되기 일쑤다. 가방에 넣어두면 잘 빠지기까지 한다. 추천하지 않는다.
실용성 3대 덕목 ☆ ☆ ★
기능성 ☆ ☆ ☆
감성 ★ ☆ ☆
3.
50 books to read before you die
‘죽기 전에 읽어야 할 문학 50선’ 이라는 주제로 만들어진 책갈피다. <1984>, <길 위에서> 등 고전과 <해리포터 시리즈> 같이 기록적인 현대 소설까지 총 50개를 꼽고 있다. 모두 좋은 작품들이니 읽은 책, 안 읽은 책을 헤아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책갈피 자체가 두껍고 무거워서 내구성은 좋지만, 같은 이유로 책에서 곧잘 빠져버린다. 또 작고 얇은 책에 사용하기 적합하지 않다. 웬만하면 집에서 전시해두는 벽돌책에 사용하시라.
실용성 3대 덕목 ★ ☆ ☆
기능성 ☆ ☆ ☆
감성 ★ ★ ☆
4.
자석 책갈피
펼치면 양옆에 자석이 있는 책갈피다. 이 책갈피의 가장 큰 장점은 책이 상할 걱정이 없다는 것. 책장에 끼워서 고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력을 이용해 종이에 무리를 주지 않는다.
아래 책처럼 아주 오래된, 그래서 더는 훼손하고 싶지 않은 책에 사용한다.
물론 가방에 넣고 휘적휘적 다니면 책에서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오래된 책은 대개 집에서 안전하게 읽고 밖에 가져가지 않기 때문에 괜찮다.
실용성 3대 덕목 ★ ☆ ★
기능성 ★ ★ ☆
감성 ★ ★ ☆
5.
펜꽂이 책갈피
고리에 펜을 꽂을 수 있는 책갈피다. 이런저런 메모를 하면서 읽는 책에 사용하기 좋다.
클립이 너무 빡빡하지 않아서, 종이가 잘 상하지도 않고 유용하다. 자주 애용하는 책갈피.
실용성 3대 덕목 ★ ★ ★
기능성 ★ ★ ☆
감성 ★ ☆ ☆
6.
매듭 책갈피
‘보라색 소라랑 돌, 나뭇잎 매듭으로 만들어주세요’ 라고 주문 제작한 책갈피다.
책에 끼워두면, 웬만해선 떨어지지 않는다. 줄이 길어서 큰 그래픽 노블 도서에도 사용할 수 있다. 만들어주신 A님과 아주 얕은 인연이 있어 더 애정이 간다. 취향에 맞춰 맞춤제작한 것이니, 당연히 여러 면에서 마음에 꼭 들 수밖에.
실용성 3대 덕목 ★ ★ ★
기능성 ★ ★ ☆
감성 ★ ★ ★
7.
추억이 깃든 책갈피
그래서 최애는 뭐냐고? 싸제(?)가 아무리 좋아봤자, 추억이 깃든 물건만할까.
최애는 이 아이다. 어린시절, 친구가 파스텔 그림을 그렸다며 준 것인데, 받자마자 책갈피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뒷면에 당시 유행하던 반짝이 펜으로 ‘나의 가장친한 친구 OOO이 준 책갈피. OOO야 고마워’라는 메모를 남기고 코팅을 했다. 2001년 8월 27일 일이다. (OOO와는 여전히 아주 가깝게 지낸다.)
당시엔 사람들이 코팅을 많이 했었는데, 사실 나는 이것을 마뜩치 않아했었다. 쉽게 쓰고 버릴 종이들을 괜히 코팅까지 해서 작 썩지도 않는 쓰레기까지 만드냐는 불만이었다. 그래서 이 그림을 코팅할 때 꽤나 결심을 필요로 했다. 코팅한 것이 아깝지 않게 아주 오래오래 간직하고, 사용하겠다는 결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