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껍데기는
💲

기후예산, 유감

태그
예산
기후
숫자와는 영 친분이 없는, 숫자와 낯가리는 사이일지라도 예산은 참을성과 집착을 발휘해봄직한 영역이다. 그 사회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예산이기 때문이다. 즉 예산은 숫자의 영역이 아닌, 여러 가치&도덕적 판본들이 우선순위 겨루기를 하는 영역인 것이다. 이 맥락에서, 우리 사회는 기후위기 대응에 어떤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있나. ‘’기후예산’’으로 살펴보자.
발행일
2025/01/04
업데이트 날짜
The budget is not just a collection of numbers, but an expression of our values and aspirations.
숫자와는 영 친분이 없는, 숫자와 낯가리는 사이일지라도 예산은 참을성과 집착을 발휘해봄직한 영역이다. 그 사회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가감 없이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예산이기 때문이다. 즉 예산은 숫자의 영역이 아닌, 여러 가치&도덕적 판본들이 우선순위 겨루기를 하는 영역인 것이다.
이같은 예산의 위상은 아이러니하게도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의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에서도 드러난다.
비상 계엄 선포 ‘긴급 대국민 특별 담화’ 전문
윤 대통령은 특별 담화에서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본질 기능을 훼손”했다며 “이러한 예산 폭거는 한마디로 대한민국 국가 재정을 농락하는 것”이라고 비상계엄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윤 대통령이 예산을 통해 지키고 싶었던 가치, 우선순위는 무엇이었을까.
이 궁금증을 안고 윤 대통령의 담화 - 예산 대목을 다시 읽으니,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바로 ‘대왕고래’ 사업으로 잘 알려진 심해 가스전 개발 사업. 윤 대통령은 해당 사업 예산이 민주당 단독 삭감된 것을 ‘예산 폭거’, ‘국가 재정 농락’으로 규정했다. 기후위기에 대응할 (righting wrongs) 수 있는 마지막 세대/시대에 아직도 신규 화석연료 개발 사업에 돈을 쏟아 부으며 산유국의 꿈을 버리지 않는 정부여당의 모습. 나의 권리를 위임해주기엔 이들이 미는 가치는 2024년 비상계엄만큼이나 시대착오적이다.
문제의 대왕고래 사업은 497억 원 예산이 전액 삭감된 후에도 살아남았다(아직은). 석유공사가 대왕고래 시추에 드는 비용을 전액 자체 부담해 1차 시추를 강행하겠다고 밝힌 것. 이 대목에서 현 정부여당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기후 대응’은 끄트머리에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섣부른 심증이길 바라며 다시 예산으로 눈을 돌려보자. 2025년 대한민국 정부 예산에서 ‘기후 대응’은 어떤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을까. 이 궁금증을 안고 기후예산을 들여다봤다.

기후예산, 유감

현재 우리나라에는 기후위기 대응을 전담하는 정부부처가 없다. 자연히 관련 정책 사업과 이들의 예산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특별 목적을 위해 ‘22년부터 운용하고 있는 기후대응기금을 필두로 산업부, 국토교통부, 환경부 등 예산을 들여다봐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우리나라 정부 예산에서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된 (긍정적/부정적 연관성 모두 포함) 예산 규모를 파악해 전체 예산에서 적절한 규모인지 보고, 예산에서 드러나는 정부의 정책 방향성을 평가하고, 구체적으로 감액 혹은 증액이 필요한 사업 예산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는 가장 마지막 분석법, 특히 ‘감액’이 필요한 사업에 집중해 ‘25년 기후예산을 들여다봤다.
기후예산 관련 자료 중 구체적인 증액 혹은 감액 제안까지 한 것으로는 ① 더불어민주당의 기후행동의원모임 ‘비상’이 발표한 <2025 기후예산 프로젝트 사업> 자료 ② 기후환경단체 플랜1.5가 발간한 [기후현안] 2025년도 기후예산: 주요 사업별 쟁점 분석 보고서가 있다. 이 자료들에서 ‘감액’이 필요하다고 짚은 사업 예산이‘25년 정부 확정예산에서 어떻게 편성됐는지 확인해봤다.

비상 & 플랜1.5가 꼽은 감액이 필요한 사업 - ‘25년 확정예산에서 감액 여부

사업명
감액 의견
‘25 확정예산 감액 여부
비상 & 플랜1.5
유전개발사업출자
화석연료 수요 감소와 탄소배출 유발 부담 분석 필요
497억 원 감액 (대왕고래 예산)
비상
국가무연탄사용발전소 한시적지원
무연탄은 온실가스를 더 많이 배출하므로, 탈석탄 차원에서 우선 폐쇄 필요
-
비상
탄가안정대책보조
대표적인 화석연료 지원금으로 감액 필요
-
플랜1.5
전력해외진출지원
원전 지원 예산, 감액 필요
-
플랜1.5
무탄소에너지보증
원전/SMR 보증, 감액 필요
-
플랜1.5
해외자원개발특별융자
화석연료 개발 사업, 감액 필요
-
플랜1.5
가덕도신공항, 대구경북신공항, 새만금신공항, 제주 제2공항
항공은 타 교통수단 대비 탄소집약도가 높은 점 등 고려해 전액 삭감 필요
-
정리 하자면,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감액이 필요한 사업으로 꼽힌 사업들 중 대왕고래 사업만 실제 예산 삭감이 이뤄졌고, 그마저도 전액삭감에도 불구하고 단행되고 있다. ‘25년 정부 예산은 우리 사회가 여전히 화석연료에 대한 강한 경로의존성을 갖고 있으며, 에너지 전환에 있어 재생에너지가 아닌 사회적/경제적 타당성 검증이 미비한 원전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계엄 - 탄핵 정국 이후엔 조기대선 국면으로 전환될 것이다. 새로운 정부여당이 들어선다는 뜻이다. 이 새 정부의 기후 정책과 정책을 집행할 예산은 다른 시대정신을 보여주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