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껍데기는
🌌

욕망의 재배치

태그
‘말과 삶을 닮게 하는’ 문제를 놓지 않기 위해 시도 하고 있는 것은 욕망의 재배치이다. 가야트리 스피박의 텍스트에서 수집한 것인데, 스피박은 욕망의 재배치가 인문학의 윤리적-정치적 과제라고 말한다. <다른 여러 아시아>에서 해당 부분을 읽자마자 나는 내게 필요한 것이 이 ‘욕망의 재배치’라는 생각을 했다.
발행일
2024/09/13
업데이트 날짜
지난 4월, 시민사회 운동의 어른이었던 홍세화 선생이 별세했다. 소식과 함께 SNS 피드엔 홍 선생을 추모하는 글과 그가 생전 마지막으로 쓴 한겨레 칼럼 ‘마지막 당부: 소유에서 관계로, 성장에서 성숙으로’가 회자됐다.
홍 선생은 이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진보나 좌파를 말하는 것과 진보나 좌파로 사는 것은 다르다. 말할 수 있는 것도 특권에 속하는데, 적잖은 입이 말로는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기도 하지만 삶은 신자유주의를 산다.
홍 선생이 귀천한 날 저녁 퇴근을 하고 우연히 그동안 묵혀뒀던 녹색평론 2023 겨울호를 폈다. 목차를 읽는데 정성헌 선생의 인터뷰가 눈길을 끈다.
자기변화가 없으면 곤란해요. 자기변화 없이 세상변화만 요구하면 오래 못 갑니다. 자기변화가 운동의 근본 동력이에요. (정성헌)
같은 날 극강의 병렬 읽기(라고 쓰고 집중력 결핍이라고 읽음)를 하며 펴든 <기후책>에서는 이런 구절에 밑줄을 그었다.
우리는 운전석에 앉아 졸고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운전대를 꺾어 이 사회를 절벽 쪽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유가 뭐냐고? 잔잔한 호수에 파문을 일으켰다가 밥줄이 끊어질까봐 두렵기 때문이다. 명사들과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명성을 얻고 기득권층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서다. 무엇보다 자신이 내린 결론이 두렵기 때문이다. 자신은 높은 보수와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생활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조명을 받는 위치에 서면 뿌듯한 기분이 든다.
같은 날 읽게된 서로 다른 텍스트들인데, 독자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모두 같다.
말만 하지 말고, 실제 삶으로 실천하라.
이것이 순도 높은 우연인지 혹은 내가 무의식에 비슷한 텍스트를 찾아 읽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된 이상 이 문제를 외면해선 안 된다는 의무감 혹은 부채감이 생겼다.

흔한 것과 희귀한 것

말과 행동/실천(그리고 행함 총합인 삶)이 서로 닮게 하라는 주문은 얼마나 난감한가. 얼마나 어려운가. 또 그렇기에 얼마나 손쉽게 외면당하는가. 나는 기억의 호수에서 말과 삶을 전연 따로 놀리는 수많은 얼굴들, 그리고 이 얼굴들을 마주했던 상황들을 수천, 수만, 수억 개 건져올릴 수 있다. 물론 나 스스로의 얼굴 포함이다. 그만큼 이 불일치는 너무 흔하다.
반면, 그 반대 - 말과 행동/실천(그리고 행함의 총합인 삶)이 불일치 - 는 얼마나 안락한가. 또 얼마나 손쉽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 나는 이 불일치를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수만 가지 말을 들어봤다. 물론 내가 하고 내가 들은 말 포함이다. 말과 일치하는 삶은 너무 희귀하다.

욕망의 재배치

‘말과 삶을 닮게 하는’ 문제를 놓지 않기 위해 시도 하고 있는 것은 욕망의 재배치이다. 가야트리 스피박의 텍스트에서 수집한 것인데, 스피박은 욕망의 재배치가 인문학의 윤리적-정치적 과제라고 말한다. <다른 여러 아시아>에서 해당 부분을 읽자마자 나는 내게 필요한 것이 ‘욕망의 재배치’라고 생각했다.
인류세를 살아가는 인간 동물 1인으로서 ‘욕망의 재배치’는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나의 생태적 영향력을 최소화하기
이를 위해 모든 가치 체계를 경제적 가치로 일원화하는 (그렇지 않은 척 해도, 사실을 그러한) 상황들에서 빠져나오기
탄소배출을 많이 할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가지고 있는 모든 비판적 사고력을 동원해볼 것
생태적 영향력을 최소화하는 활동과 관계를 욕망하고, 그것들 가까이 스스로를 데려다 놓기
어떤 ‘가치’ 보다는 잿밥(해당 가치 자체가 아닌 이를 추구하는 척 하며 챙길 수 있는 이미지&이익)에 더 관심 있는 상황들과 멀어질 것
말과 삶이 닮은, 또 닮게하려 노력하는 이들과 더 많은 곁과 시간을 공유하기
이렇게 욕망의 재배치에 관한 글까지 썼으니, 말과 삶이 전연 따로 놀아 부끄러움을 느끼는 경험을 적극 줄여 나갈 것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