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ill, baby, drill”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공화당 후보 지명 수락 연설에서 외친 말이다.
트럼프가 처음 한 말인가 했는데 나름 계보가 있는 슬로건이었다. 2008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처음 등장했고, 2008년 부통령 후보 토론에서도 사용됐다. 심지어 아마존에선 이 슬로건이 박힌 상품들이 팔리고 있다.
출처: 아마존
위 이미지도 보여주듯, Drill, baby drill은 석유랑 가스를 양껏 시추하자는 뜻이다. 기후위기가 인간 활동으로 인한 ‘인재’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명확하고, 그 인간 활동들 중 기후위기의 주범으로 손꼽히는 것이 화석연료 - 즉, 석유와 가스(O&G)인데, 이를 양껏 추출하자는 구호가 세계 최강국을 자처하는 미국의 대통령 후보 입에서 나온다.
왜냐면, 트럼프와 O&G 산업은 운명 공동체니까
뭔가 쎄하다, 구리다, 이게 맞아? 싶다면 일단 돈 나오는 구멍을 살펴보라는 어느 선배의 조언에 기대어 - 오픈시크릿(OpenSecrets)을 좀 둘러보니, 요지경 세상이 이해되기도(?) 한다. 트럼프와 O&G 산업은 운명 공동체일 수밖에 없는 정황말이다.
오픈시크릿은 미국 정치판의 돈맥을 추적하는 비영리 단체로, 각 후보와 정당이 받는 후원금의 규모와 출처를 오픈소스로 제공한다. 오픈시크릿 데이터에 따르면, O&G 산업이 트럼프에 댄 선거 자금은 $13,705,514. O&G 산업에서 후보들에 댄 선거자금 전체의 69.66%가 트럼프에게 갔다. 정당별로 보면, O&G 산업 후원금의 96%가 공화당 후보에게 갔다.
트럼프 후원자로 알려진 대표적 O&G 기업들
-Energy Transfer LP(오일, 가스 회사)
- CrownQuest(시추 회사)
- Continental Resources(오일 가스 회사)
- GeoSouthern Energy(가스 회사)
개인 후원금을 살펴봐도, 트럼프랑 O&G의 케미를 확인할 수 있다. 포브스(Forbes)가 정리한 ‘트럼프를 후원한 갑부들 (Here Are Trump’s Top Billionaire Donors)’를 살펴보면, 후원금 규모 기준 top 26 중 3명이 O&G 갑부다.
•
CrownQuest의 CEO인 티모시 던(Timothy Dunn)
•
GeoSouthern Energy 창업주인 조지 비숍(George Bishop)
•
Energy Transfer의 CEO인 켈씨 워렌(Kelcy Warren)
기후 부정론자인 트럼프가 친화석연료 기조를 갖고 있어서 그에게 O&G 돈이 몰린 것인지, 선후관계가 반대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또 그것을 따지는 것이 큰 의미는 없지만) 트럼프와 O&G는 번영을 공유하는 운명 공동체라는 것. 세계적인 갑부 트럼프는 선거에 자신의 돈을 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철저한 사업가인 그에겐 선거와 정치도 그저 돈벌이 수단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실존적 위협(existential threat)이 된 기후위기 따위는 관심사 밖이다. O&G 산업은 이 이해관계를 함께 공유한다.
“Kill, baby, kill”
트럼프가 외친 “Drill, baby, drill”의 실상은 “Kill, baby, kill” 이지는 않을까. 킬, 베이비, 킬은 2010년 멕시코만 BP 해상 시추 시설에서 석유가 대규모 유출돼 등장한 패러디였다. 확실한 것은 ‘유출 사고’가 나지 않아도, O&G 확장은 “Kill, baby, kill”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인류의 기후위기 대응력이 크게 후퇴할 것이냐, 진전할 것이냐의 문제가 많은, 의구심을 들게 하는, 미국 민주주의에 달려있다는 것은 웃픈 현실이다.